덴마크에 도착하면 거리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자전거다. 소득이 3만달러가 넘고 대부분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지만 노약자를 제외하고 인구
5백20만명 거의 전원이 자전거를 이용한다. 출.퇴근은 물론 운동, 데이트, 웬만한 배달도 자전거로 하고 있다. 덕분에 덴마크에는 교통 체증,
자동차 배기공해, 주차전쟁이라는 말이 없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몸 움직임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율동은 평화스러운 풍경을 더욱 평화스럽게 보이게
한다.
하지만 덴마크에 부임한 지 반 년이 넘도록 여유있게 점심 식사를 즐기는 직장인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점심시간에는 대부분 음식점이
문을 닫고 직장인들은 샌드위치 등 간단한 식사를 10∼20분 내에 끝마치거나 일을 하면서 먹곤 한다. 점심시간으로 30분을 넘게 소비하면
근무시간에서 한 시간 더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없이 단순히 교제를 위하여, 또는 장래에 덕을 볼지도 모르니까 알아 놓기 위하여 만나는 것은
사절이다.
덴마크에서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세금이다. 소득세는 평균 약 55% 가량이고 77%까지 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세금에 대해 저항하는 것을 볼 수 없다. 이곳 주민들과 대화하는 기회에 "소득의 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도 괜찮냐"고 물어보니 매년 유엔 및
유럽연합(EU)의 투명도 조사에서 1, 2등을 하는 나라의 국민답게 세금을 투명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불만이 없다고 한다. 물론 병원도 무료,
학교도 무료다. 출산하면 우유값 등 양육비를 국가에서 현금으로 지급받는다. 대학생은 우리 돈으로 월 16만원의 용돈을 받는다. 유아원.유치원이
오전 6시30분∼오후 5시30분까지 운영되므로 직장 여성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직장에서 근무할 수 있다.
이런 정책들은 물론 사회주의
성향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과거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나타난 생산성 저하는 볼 수가 없다. 일을 지상으로 여기지 않을 뿐이지,
필요한 일을 일단 시작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덴마크에서는 모든 것을 자기가 해야 하고 배달을 시키려면 비싼 인건비를 물어야 한다.
덴마크 국민들의 독특함은 지난 9월 세계 26개국 2,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또한번 실감했다.
주최측에서 국제회의 일정이 잡히자 쓸 만한 호텔 방을 모두 블록(block)시켜 놓고는 회의 참가국들에 "호텔을 1년 전에 예약해라. 아니면
호텔을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평소보다 호텔비를 30∼40% 비싸게 받으면서도 "회의 개막 5개월 전까지 전 대표단의 호텔비 전액을
지불하지 않으면 예약을 취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국제회의를 일단 유치한 이상 호텔비를 사전에 내기 싫으면 오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덴마크에서는 한.일 월드컵 때 축구장 좌석이 비었다는 기사를 보고 '우리한테 맡겼으면 크게 흑자를 내게 했을 것'이라며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검소하기만 하고 서비스는 기대할 수 없는 덴마크의 이러한 호텔 영업 방식은 외국인들에게는 다소 고압적이고 무례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깨끗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 공해 때문에 살충제도 쓰지 않는 나라, 세계에서 국내총생산 대비 무상 원조 비율이 제일
높은 나라여서 그런지 덴마크에서는 연중 계속 국제회의가 열린다. 세계 도시 중에서 12번째로 국제회의가 많이 열리는 곳이
코펜하겐이다.
최상덕 / 駐 덴마크 대사